2022. 12. 11. 09:15ㆍ1일N곡
일본의 전자 음악은 역사가 깊고 수준도 높다.
토와 테이,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 플리퍼즈 기타로 대표되는 '시부야계' 음악은 이미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았다. 꼭 '시부야계'가 아니더라도, 다이시 댄스, 프리템포, 나카타 야스타카도 걸출한 아티스트들들이다. 나카타 야스타카가 프로듀스하는 퍼퓸과 캬리 퍄뮤퍄뮤의 음악은 난해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다오코(DAOKO)도 한동안 끊겼던 시부야계의 명맥을 이어 활발하게 활동 중이고, 기가(Giga)나 테디로이드(TeddyLoid)등 서브컬쳐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일렉트로니카 프로듀서도 많다. 최근에는 스네일즈 하우스(Snail's House)등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칩튠 사운드가 특징적인 카와이 베이스(Kawaii Bass)라는 장르가 파생되어 인기를 얻고 있기도 하다.
일본 전자음악의 계보를 되짚어 보면, 결국 하나의 뿌리로 모인다. 일본식 전자 음악의 시작,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 YMO)가 바로 그들이다.
잘난 놈 셋이 모이다
YMO는 핫피 엔도(はっぴいえんど)의 베이시스트 호소노 하루오미와, 사디스틱 미카 밴드(Sadistic Mika Band, SMB)의 드러머 타카하시 유키히로, 그리고 도쿄예술대학 음악과 출신의 작곡가이자 키보디스트 사카모토 류이치가 모여 결성되었다. 핫피 엔도는 말할 것도 없이 일본 포크의 전설이다. 핫피 엔도의 <카제마치 로망>은 일본 대중음악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명반이다. SMB는 그 유명한 기타리스트 타카나카 마사요시가 있던 밴드로, 70년대에 영국 진출 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고. 이렇게 잘난 셋이 모여서 전자음악밴드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가 결성된다.
사카모토 류이치도 이 시점에 개인 데뷔 앨범 <Thousand Knives>를 발표해 주목받고 있었고, 다른 두 멤버도 이미 검증된 연주자였던데다 당시로써는 매우 실험적이었던 전자음악을 한다고 하니 레코드사에서는 이들의 음악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바로 미국 데뷔가 결정되고 세계 각지에서 라이브를 진행한다. 여러 시대적 흐름이 맞물리면서 YMO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Yellow Magic Orchestra>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지금까지도 라이브 셋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곡이 데뷔 앨범의 수록곡, <Rydeen> <Tong Poo> <Firecracker> 되시겠다.
전자 음악의 범위는 매우 넓다. 대중 음악에서 "일렉트로니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테크노/신스팝과 그 하위 장르들을 말한다. 테크노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장르로 자리매김한 시기를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1974년 음반 <Autobahn>과 도나 서머(Donna Summer)의 1977년 싱글 <I Feel Love>로 본다.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렉트로니카는 무척 생소한 것어서, 1970년 크라프트베르크의 라이브 영상을 보면 사람들의 당황이 그대로 느껴진다.
대한민국에서 70년대 후반은 어떤 음악이 인기를 얻던 때인가? 남진과 나훈아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산울림이 그룹사운드의 전성기를 열기도 한다. 심수봉이 10.26 사건에 휘말린 것도 이 즈음이다. 양희은과 송창식같은 싱어송라이터가 등장하던 시기이며, 포크와 사이키델릭, 펑크, 록앤롤의 영향을 받은 초창기 그룹사운드와 트로트가 차트를 지배하던 시기다.
YMO의 전자 음악은 단순히 "일본의 테크노 1세대" 따위가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앞서있었던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들의 활동 시기는 일본이 폭발적인 경제 성장과 함께 야마하, Korg, 롤랜드 등의 기업이 신디사이저를 만들어내던 시기이기도 하다. 신디사이저 기술의 발전과 풍족한 경제력, 일렉트로니카의 태동, 뉴 로맨티시즘과 오리엔탈리즘의 유행 등 시기를 완벽하게 타고 난 YMO. 이들이 해외 투어를 마치고 귀국했을때, YMO는 이미 슈퍼스타였다.
동쪽에서 불어온 바람
<Tong Poo>는 중국어로 <동풍>이라는 뜻으로,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동풍>에서 제목을 따 온 곡이다.
극동에서 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모은 YMO에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제목이 있을까? 1978년 당시 사카모토 류이치는 중국 문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류이치의 데뷔 앨범 <Thousand Knives>는 모택동의 시 <정강산>을 읊는 소리를 보코더로 변조한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가 하면, 혁명가곡 <동방홍>을 어레인지 하기도 한다. <Tong Poo>가 쓰여진 시기가 <Thousand Knives>의 작업 시기와 비슷하다고 밝힌 만큼, 문화대혁명과 중국 문화에 대한 동경이 <Tong Poo>에도 짙게 녹아있다. 실제로 류이치는 베이징 교향악단이 <Tong Poo>를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작곡했다고. 일본 밴드의 곡인데 어쩐지 중국적인 느낌이 들었다면 정확하게 들었다는 이야기이다.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고속성장을 하던 일본에 대한 서구권의 두려움은 유명한 <블레이드 러너>의 게이샤 전광판 신에서 잘 드러난다. 최첨단의 신디사이저 사운드에 신비롭고 낯선 극동의 멜로디. YMO의 음악은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영리하게 반영했고, 미국과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내가 알던 <Tong Poo>가 아닌데?
You know about me?
My name is Tong Poo!
I'm running from far away!
Let's dance!
Let's dance with me!
Hear me come! The press of Tong Poo!
Let's dance!
Let's dance with me!
<Tong Poo>는 명실상부 YMO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이지만, 사람마다 기억하는 버전이 다를 수도 있다.
YMO가 A&M 레코즈와 손잡고 미국에 진출했을때 앨범에도 이런저런 수정이 가해졌다. <Tong Poo>는 <Yellow Magic (Tong Poo)> 로 제목이 바뀌고, 보컬이 더해졌다. 보컬을 담당한 사람은 미나코 요시다(美奈子 吉田). YMO가 보컬을 미나코 요시다에게 맡길 것을 요청했다고 하지만, 밴드가 이런 수정을 달가워 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공연 중 단 한번도 영어 보컬을 살려서 공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잘 알려진 버전으로는 야노 아키코(矢野 顕子)의 보컬 버전(1980)이 있다. YMO의 키보드 세션이었던 아키코는 YMO 멤버들의 프로듀싱으로 솔로 앨범을 내는데 그녀의 정규 4집 <ごはんができたよ>의 7번 트랙에 수록되어있다. 야노 아키코는 류이치와 1982년에 결혼하기도 했다.
작곡자인 류이치 사카모토의 1999년 연주 앨범 <BTTB>에 수록된 피아노 버전도 아주 유명하다. YMO의 키보디스트 류이치보다 영화 음악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류이치 사카모토에 더 익숙한 사람은 이 버전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친 것 같지만 연탄곡이라고.
2021년 11월에는 준야 와타나베의 '꼼 데 가르송' 패션쇼를 위해 리믹스 버전을 발표하기도 했다.
무려 44년이나 된 곡이지만 여전히 중독적인 멜로디와 세련된 진행이 매력적인 <Tong Poo>. 시대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지금 들어도 정말 좋은 곡이기 때문에 꼭 한번은 들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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